[뉴스] [전남일보] 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 소형 건축물 광주폴리 도시의 새로운 문법
페이지 정보
본문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도시가 창조해내는 감성과 미감을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예술가의 과제로 보았다. 벤야민은 19세기 자본주의 상징인 파리의 '도시 산책자'가 되어 아케이드, 패션, 박람회, 거리 등의 단상을 담은 필생의 역작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집대성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감각을 지닌 파리는 벤야민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도시는 일상적 혁명과 상호작용의 실천 장소이자 역동성에 기반한 창조적 잉여를 지닌 곳이며, 예술의 미래는 도시적인 것에 있다"라고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말했듯이, 21세기 도시가 지닌 가능성과 잠재력, 부가가치는 무한하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문화예술의 경제적 파급력이 부각되면서 세계 각 도시들은 정체성을 살린 미술관과 비엔날레 등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에 나서는 추세이다.
광주라는 도시는 어떤가?
1995년 태동해 동시대 최첨단 담론을 26년 동안 국제 미술계에 발신해온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광주는 예술에서 확장되어 건축적인 요소가 도시 곳곳에 산포되어 있다.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소규모 건축물을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는 곳이 광주인 것이다.
(재)광주비엔날레는 도심 재생 프로젝트인 광주폴리 사업을 지난 2011년부터 추진해왔으며 2017년까지 소형 건축물인 30개의 광주폴리를 세웠다. 근대화와 개발 주도로 획일화된 도시 풍경에 광주폴리가 씨앗처럼 뿌려지고 공동체에 뿌리내리면서 문화지형도 변화하고 있다. 폴리는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Bermard Tshumi)가 1980년대 파리의 라빌레트 공원을 디자인하면서 사용한 이후 도시 속에 문화적 특성을 지닌 소형 공공 시설물이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과거 유럽의 대저택 정원에서 기능 없는 장식적 건축물을 의미했으나, 라빌레트 공원에 35개의 구조물이 설치되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폴리가 알려졌다.
파리 근교 도살장을 공원으로 재탄생시킨 추미의 프로젝트는 광활한 부지를 점, 선, 면 세 개의 틀을 이용해 구획 및 정리하면서 새로운 건축의 탄생을 선언했다. 규모와 용도의 탈피라는 해체주의 철학을 적용하면서 중요한 건축 어휘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건축학적 맥락에서 광주폴리는 장식적 역할뿐 아니라 역사성과 기능성까지 보유하면서 강력한 문화적 힘을 창출하고 있다.
'역사의 복원'을 주제로 광주폴리I은 광주 옛 읍성터를 따라 11개의 광주폴리가 세워지면서 도시의 역사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광주폴리II는 '인권과 공공공간'이라는 주제에서 알 수 있듯 518민주화운동의 상처를 지닌 광주의 역사에 천착하고 공론장으로서 도시의 역할에 화두를 던졌다. 광주폴리Ⅲ는 그동안 폴리가 수행한 담론적 무게를 살짝 덜어내고 공동체 속에 틈입했다. 일상에서 문화예술의 멋과 맛을 접할 수 있는 매개체와 도시 활성화 장치로서 실용성이 대폭 강화되었다. 이에 공폐가를 리모델링한 카페와 식당을 비롯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등이 구현되었다.
이처럼 광주폴리는 구도심 공동화를 소형 건축물로 해결하면서 커뮤니티 소통의 장이자 역사와 추억, 삶의 흔적이 깃든 도시적 맥락 안에서 다양하게 작동하고 있다. 또한 지역 내 풀뿌리 문화예술 단체와 연대한 다채로운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광주폴리를 근거지로 열리면서 지역민의 문화 향유에 기여하고 있다.
광주폴리 Ⅰ를 추진한 승효상 건축가가 '빈자의 미학' 저서에서 건축이 지녀야할 요소로 언급한 합목적성과 장소성, 시대성까지 아우르는 장소특정적 광주폴리는 도시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새로운 '문화언어'이자 '도시문법'인 것이다.
지난달 초에는 광주폴리IV인 관문형 폴리가 완공되면서 광주의 문맥이 열린 구조가 되어 더욱 풍요로워졌다. 구도심에서 확장되어 광주톨게이트 상부에 설치되면서 광주라는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도시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예술 작품을 서서 바라봐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오로지 스쳐지나가는 행위로도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무등산의 조형적 형상과 송출되는 미디어 아트는 광주로 진입하는 관람객에게 단 몇 초 간의 만남일지라도 광주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갈수록 삭막해지고 단절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가 건네는 '환대'이기도 하다.
동시대 미술 공간은 화이트큐브의 정제된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시민들의 노동과 웃음이 깃든 일상적 시공간이며, 소통과 공감, 연대가 생산·확산되는 공동체의 현장이다. 장동 사거리 '소통의 오두막'에서 약속을 잡아보고, 길을 걷다가 세계적 건축 거장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만든 최초의 여론조사 장이자 투표소인 '투표' 작품에 참여하면서 민주적 실천 행위를 해보자. 광주역 앞 교통섬 '혁명의 교차로'를 지나칠 때는 광주를 비롯해 세계사에서 발생한 혁명의 역사를 관통해보자. 서석초등학교 인근 포토존으로 떠오른 '아이러브스트리트'에서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어보는 건 어떨까.
지금 여기, 광주에서 광주폴리를 경험하고, 느끼고, 교감해보자. 벤야민이 파리를 거닐었듯, 광주의 도시 산책자가 되어 광주폴리를 둘러보면서 감성과 영감을 무한대로 깨워보자.
관련링크
-
- 이전글
- [연합뉴스] 광주의 관문 밝히는 '광주폴리Ⅳ'
- 21.01.20
-
- 다음글
- [광남일보기획/특집기사] 공간재해석
- 21.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