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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프랑스 폴리 어원을 찾아서 –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르투아 백작의 내기에서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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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1-19 15:52   작성자 폴리   조회 9,403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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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와 아르투아 백작의 내기에서 탄생

도심재생의 기적 ‘폴리’에서 미래를 찾다

<7> 프랑스 폴리 어원을 찾아서 ①1777년 아르투아 백작의 폴리 바가텔

 



1806년엔 나폴레옹 1세 사냥을 위한 건물로 이용

파리 볼로뉴 숲 바가텔 공원에 위치 웅장함 ‘눈길’

 



입력날짜 : 2013. 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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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바가텔(Folie Bagatelle) 전경

프랑스 파리 볼로뉴 숲 안의 바가텔 공원에는 ‘아르투아 백작의 폴리’가 세워져 있다. 작은 성 처럼 보이는 이 폴리는 1777년 마리앙투아네트와 아르투아 백작사이의 내기에서 탄생했다. 조경 건축가 프랑수와 조셉 벨랑제에 의해 만들어 졌다. ]>




“이 작은 파빌리온(pavillon)은 폴리(folie)라고 불리며, 폴리는 귀족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해 지어진 공간을 일컫는다.” 프랑스 파리 볼로뉴 숲 바가텔 공원(Parc de bagatelle)안 ‘아르투아 백작의 폴리’앞에는 이 같은 안내문이 씌여져 있다. 아르투아 백작은 미래의 샤를 10세다. 이 폴리는 1777년 조경 건축가 프랑수와 조셉 벨랑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18세기, 지금으로부터 235년 전부터 ‘폴리’라는 단어가 쓰여 온 셈이다.


광주폴리(folly)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folie’가 어원이다. 오래전에는 ‘기쁨’(delight) 또는 ‘좋아하는 집’(favorite abode) 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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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아 백작의 폴리’ 안내문
폴리 앞에 놓여진 안내문에는 ‘이 작은 파빌리온(pavillon)은 폴리(folie)라고 불리며, 폴리는 귀족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해 지어진 공간을 일컫는다’고 씌여 있다.




옛날 영국에서 시골의 저택이나 공원 등에 자연풍경이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장식용으로 만든 작은 탑 등의 건물을 이렇게 불렀다. 또 ‘시선을 끄는 시설’이란 의미에서 ‘아이캐처’(eyecatcher)라고도 한다. 미국에서는 화려하게 장식한 전망대나 정원의 정자를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사전에는 기능적인 효용은 별로 없는 시설물로 영국에서 처음 인기를 끌어 18-19세기 초 유럽에서 성행했다고 나와 있다.

이 시기는 낭만주의 사조가 조경설계를 지배하던 때. 설계자나 건축주의 취향에 따라 저택의 장식용 건물을 중세식 탑이나 폐성(廢城), 기둥만 남은 고대신전처럼 짓기도 했다.

또 설계의도에 맞도록 대체로 모방 대상이 된 원래 건물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만들었다. 때로는 정자 등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대부분 시각적 효과만을 위해 만든 것이어서 자연배경을 더욱 돋보이게 꾸미거나 완벽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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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텔 공원 속 장미정원
프랑스 파리 볼로뉴 숲 안의 바가텔 공원에서는 장미정원이 꾸며져 있다. 형형색색의 장미 꽃들로 꾸여진 정원에는 세계 곳곳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폴리의 어원을 찾아 프랑스 파리 볼로뉴 숲 바가텔 공원(Parc de bagatelle)으로 가는 길을 멀었다. 지하철 1호선 Les Sablons 역에서 내린 후 넓고 울창한 볼로뉴숲 속 안에 있는 바가텔 공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볼로뉴 숲은 아주 큰 산림 공원으로 동물원과 경마장 아르투아 백작의 성인 바가텔성과 호수, 폭포, 레스토랑, 카페 등등이 있다.

관광객이 찾기보다는 일반 파리 시민들이 산책을 나오거나 가족단위로 소풍을 오는 경우가 많다. 푸른 잔디밭에 누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파리시민 모습을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키가 높은 나무들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숲의 풍경과 함께 어울리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볼로뉴숲은 나폴레옹 시대부터 산책지로 이용됐으나 1852년 파리시 소유의 공원이 됐다.

북쪽에 동물원이 있고 남서쪽에 롱샴 경마장, 남동쪽에 오뙤이 장애물 경마장, 북서쪽에 아르투아 백작의 성이었던 바가텔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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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바가텔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큰 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어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쪽으로 아르투아 백작의 폴리 바가텔이 보인다.


 

볼로뉴 숲 속 바가텔 공원은 입장료 5.5유로인 유료 공원이다. 현재 공원에서는 장미 정원 축제가 한창이었다. 공원을 찾아 5분여를 걸어가니 ‘아르투아 백작의 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성 처럼 보이는 폴리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르투아 백작(미래의 샤를 10세) 사이의 내기에서 탄생됐다고 한다. 1777년 조경 건축가 프랑수와 조셉 벨랑제에 의해 만들어 졌다.

안내문에는 ‘이 작은 파빌리온(pavillon)은 폴리(folie)라고 불리며, 폴리는 귀족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해 지어진 공간을 일컫는다’라고 씌여 있다. 건축 합각에 새겨진 ‘Parva Sed Apta’라는 문구는 (르네상스 시인) 아리오스트가 자신의 집에 썼던 ‘작지만 나를 위한 집’ 이라는 문구를 그대로 차용했다.

아르투아 백작의 폴리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한 복원가에게 팔려 파티를 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그리고 1806년에는 나폴레옹 1세가 사냥을 위한 건물로 사용했다. 1824년 샤를 10세로 즉위했던 아르투아 백작은 1814년 폴리를 그의 아들에게 준다.

1830년 혁명이후 루이 필립왕은 영국의 귀족인 로드 세이무어에게 폴리를 팔게 된다. 바로 이 사람이 성을 다시 보수 하고 24㏊정도 되는 정원을 만들게 된다.

그 후 리차드 윌레드 경이 물려받아 1890년 그의 생 마지막 까지 이곳에서 살게 된다. 그는 그의 아들을 위해 ‘트리아농’이라 명명된 건물을 짓게 된다. 그리고 1905년, 파리는 영역 분할 문제를 피하고 센느강까지 이르는 불로뉴 숲을 지키기 위해 폴리 바가텔을 다시 사게 된다.

/파리=글·사진 광주매일 오경은 기자 white@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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